지리산 천왕봉 정상
산행 구간
중산리~천왕봉~제석봉~연하봉~촛대봉~벽소령
산행 일자
2016년 06월 25일~26일 [토.일]
산행 형식
대중교통 / 대피소1박 / 1무1박3일
산행 인원
개인산행
산행 거리
약 33km [첫째날:17km/둘째날:16km]
산행 시간
04시 30분 ~ 18시 20분 [14시간 00분]
08시 00분 ~ 17시 00분 [09시간 00분]
구간 기록 [첫째날]
04시 30분 : 중산리 출발 (~1.3km)
05시 00분 : 삼거리 도착 (~1.1km)
05시 50분 : 망바위 도착 (~0.9km)
06시 20분 : 로터리 대피소 도착 [휴식]
07시 00분 : 로터리 대피소 출발 (~0.1km)
07시 00분 : 법계사 도착 [관광]
07시 20분 : 법계사 출발 (~1.2km)
08시 00분 : 개선문 도착 (~0.8km)
09시 10분 : 천왕봉 도착 [휴식]
09시 30분 : 천왕봉 출발 (~1.1km)
10시 00분 : 제석봉 도착 (~0.6km)
10시 20분 : 장터목 대피소 도착 [식사..휴식]
13시 30분 : 장터목 대피소 출발 (~0.8km)
13시 50분 : 연하봉 도착 (~0.3km)
14시 10분 : 화장봉 도착 [휴식]
14시 20분 : 화장봉 출발 (~1.8km)
14시 50분 : 촛대봉 도착 (~0.5km)
15시 10분 : 세석 대피소 도착 (~0.6km)
15시 20분 : 영신봉 도착 (~1.3km)
16시 10분 : 칠선봉 도착 (~0.2km)
16시 20분 : 칠선봉 전망대 도착 [휴식]
16시 40분 : 칠선봉 전망대 출발 (~1.5km)
17시 20분 : 덕평봉 도착 (~2.7km)
18시 20분 : 벽소령 대피소 도착 [산행종료]
기타 사항
지리산 종주 산행 첫째 날(중산리~천왕봉~벽소령) 후기
GPS 측정거리와 이정표 거리 차이 있음
휴식 시간이 많으니 산행시간은 참고만
◈ 지리산 종주 등산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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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 사진 ◈
국내에서 가장 높은 '山'은 제주도의 한라산(漢拏山/고도1.950m)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이자 육지에서 가장 높은 '山'은 지리산(智異山/1.915m)입니다. 한라산이 섬에 있어서 접근성(교통)이 불편한 이유도 있겠지만 지리산은 국내에서 가장 많이 찾는 인기 명산 1위의 산입니다. 지리산 코스가 워낙 많다 보니 비교적 접근이 쉬운 구례 쪽의 '노고단(老姑壇)'을 찾는 관광객과 봄이면 철쭉 관광으로 많이 찾게 되는 '서북 능선'의 남원 '바래봉'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러겠지만 한국의 '삼신산(三神山)'이라 불리는 민족의 영산(靈山) 중 한 곳이라서 그 상징성으로 인해 등산을 다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꼭 한 번은 찾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주요 등산 코스로는 대부분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을 가장 많이 찾게 되고 등산 매니아들은 이후 지리산 종주로 한 번쯤은 가게 되는 곳이죠. 흔한 말로 '지리산 종주'를 해보지 않았다면 지리산에 다녀왔다고 말하지 말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습니다. 천왕봉만을 가보고 산을 잘 다니지 않는 분들이 이 말에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ㅎ 그만큼 지리산 종주는 큰 의미가 담겨 있는 산행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지리산을 좋아하는 등산 애호가들은 종주만을 고집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물론 지리산을 더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후로 비탐방 구역을 찾아다니지만요ㅎ 저도 지리산을 가게 되면 거의 대부분이 종주 코스로 가게 됩니다. 서울에서 멀다 보니 이왕이면 다 보고 오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러겠죠. 근처에 사시는 분들이야 당일로도 다녀오지만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는 그럴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번에도 작년 가을에 백두대간 남진으로 지리산 종주를 하고 다시 종주로 찾아 나서게 됩니다. 화대 종주를 포함해서 주능선 종주만 10번째 산행이 되겠네요. 이번에는 운 좋게도 대피소 예약이 되어서 무박이 아닌 1박 2일로 계획을 잡고 떠납니다
오늘의 들머리는 '중산리 탐방소'입니다. 보통 지리산 종주를 1박으로 하면 '성삼재'에서 출발해서 '세석 대피소'에서 1박 하고 다음날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로 하산을 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소수 인원의 산행일 경우는 대중교통의 접근성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1박을 할 대피소 위치 때문에 그렇기도 합니다. 2014년 가을부터 '서울 남부터미널~중산리 버스정류장' 노선이 있기 전 까지는 중산리에 접근할 방법이 불편했습니다. 기존에는 남부 터미널에서 '진주'로가는 심야 고속버스가 '중산리 탐방소'와 제일 가까운 '원지 터미널'에 정차를 해주는데 이 곳 원지에서 하차해서 중산리 탐방소로 가야 했습니다. 보통 지리산 종주를 하기 위해서는 무박으로 출발을 해야 하니 원지에 새벽 3시경 도착하면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택시비가 약 40.000원 정도 나오니 혼자 산행을 계획하고 오려면 그 부담이 크죠. 아니면 원지 터미널에서 중산리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야 하는데 첫 차 시간이 06시 30분 입니다. 그럼 산행 시간을 계획하는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나마 대중교통이 편리한 구례 '성삼재'에서 출발을 하는 종주를 많이 하게 됩니다. '지리산 종주 대중교통 이용방법' 참고 하시구요ㅎ 그리고 두 번째는 지리산을 찾는 이유 중 하나가 '천왕봉 일출'입니다. 위와 비슷한 맥락이지만 천왕봉과 가장 가깝고 빨리 갈 수 있는 등산로가 중산리임에도 대중교통으로 가게 되면 일출 시간을 못 맞추게 됩니다. 그래서 성삼재에서 출발하는 종주 산행으로 세석이나 장터목 대피소를 이용하고 그다음 날 새벽 일찍 산행을 시작해서 천왕봉에 가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서울 남부터미널~중산리 버스정류장' 노선이 생겨서 이제 무박으로도 천왕봉 일출 산행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제가 잡은 코스도 흔히들 '지리산 역 종주'라고 말하는 코스로 가게 됩니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 잡은 코스는 아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3일째 가야 하는 일정이 있어서가 가장 큰 이유이겠네요. 금요일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23시 30분 중산리행 심야 고속버스를 타고 새벽 03시경 중산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합니다. 잠시 배낭을 정리하고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약 2km 거리의 '중산리 탐방소' 입구까지 걸어갑니다.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이라 20여분이면 도착합니다. 05시경 해가 뜨면 산행을 시작하려고 탐방소 앞 식당가 의자에 앉아 기다리지만... 모기가 너무 맣아서ㅎ 04시 30분경에 산행을 시작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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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소 앞 바리게이트를 지나 도로를 따라가다가 큰 다리(법계교)를 하나 건너고 조금 더 걸어가면 좌측으로 건물과 함께 이정표가 나옵니다. 이 곳에서 좌측 숲 길로 들어가면 산행이 시작됩니다. 직진해서 가게 되는 도로는 천왕봉으로 가는 길에 있는 '법계사' 신도들이 이용하는 버스 운행 도로입니다. 예전에는 신도들을 위해서 무료... 혹은 시주 개념의 비용으로 운행하던 버스였는데 등산객들이 너무 이용하다 보니 버스 요금으로 자주 다투는 일이 생겨서 3년 전부터 정식 노선으로 운행을 한다고 합니다. 중산리 탐방소에서 법계사 밑 '순두류(환경 교육원 입구)'까지 (약 3km) 운행하는 이 셔틀버스는 주말 첫차가 07시라서 지금 시간에는 이용을 못합니다. 그러니 오전 시간에 천왕봉을 오를 때는 이 버스를 이용해서 가셔도 됩니다. 정차지인 순두류에서 법계사 까지는 약 2.4km 정도 되고... 비교적 완만한 등로라서 체력적인 부담을 덜어줄 수는 있습니다. 법계사(로터리 대피소)에서 합류하기 때문에 이후로는 코스가 같아집니다
중산리 탐방소 이후 이정표 (산행 시작 지점)
순두류(順頭流) : 지리산(智異山)의 또 다른 이름인 두류산(頭流山)에서 따온 지명입니다. '천왕봉'과 '중봉' '써리봉'의 아래 지점에 위치한 이 곳은 주위의 험난한 봉우리들 사이에 순하고 평탄한 고원(평원)이 펼쳐진다 해서 붙여진 명칭입니다.
숲 길에 접어들면 '통천길'이라 써있는 문이 나옵니다. 천왕봉을 향한 첫 관문이 되는 셈이죠
이후로 비교적 평탄한 계곡의 옆 길로 산행이 이어집니다. 계곡을 횡단하는 출렁다리를 지나 태조 이성계의 전설이 있는 '칼바위'를 지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삼거리가 나오구요. 이 곳에서 길이 나눠지는데... 좌측은 '장터목 대피소'로 바로 올라가는 '법천골' 계곡 등로입니다. 이리로 올라가면 장터목 대피소 취사장 옆 계단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가는 길에 너른 바위의 '유암 폭포'와 '법천 폭포'가 있습니다. 그리고 칼바위와 전설을 함께하는 '홈바위'가 있구요. 주로 천왕봉을 올랐다가 장터목 대피소를 지나 하산하는 코스로 자주 이용되는 곳입니다. 저는 종주코스라 이 곳에서 천왕봉 방향으로 진행을 합니다
칼바위 삼거리 이정표
칼바위와 홈바위의 전설 : 조선 '이성계'가 왕이 된 후... 지리산 중턱의 큰 바위 아래 있는 한 자객이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얘기를 듣고 장수를 보내 찾아 나서게 합니다. 장수가 지리산 구석구석을 뒤지다가 한 바위(홈바위)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발견하고 뒤로 가서 자신의 칼로 내리치니 바위가 쪼개지고 칼날이 튕겨나가 이 곳에 날아와 박혔다는.... 뭐 대략 그런 전설입니다. 칼바위는 기다란 세모 모양으로 하늘을 보고 서 있습니다.
삼거리를 지나면 약간의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망바위'가 나옵니다. 망바위의 유래는 이 곳에 올라 정면을 바라보면 남해바다가 보이고 뒤로는 천왕봉이 보인다 해서 붙여진 명칭입니다. 조망바위? 전망바위? 뭐 그런 뜻인가 보네요. 그런데 숲에 가려져있어 보이지 않을것 같네요. 돌 떨어질까 올라가지도 못하겠구요ㅎ
망바위와 망바위에 있는 이정표
가는 길에 보이는 꽃 들도 담아보고
아직 피기 전인 것 같은데... 이름은 모르겠네요
너도 모르겠고...ㅎ
오르막이 나오다가 평지가 나오다가 반복된 걸음을 하다 보면 이내 탁 트인 헬기장이 나옵니다. 천왕봉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인데 지금은 구름 속에 갇혀있네요
머리 위 하늘은 이렇게 맑은데ㅎ
동쪽 하늘도 짙은 구름이 펼쳐져 있습니다
헬기장에서 내려서면 바로 '로터리 대피소'가 나옵니다. 사진의 우측이 '순두류'에서 올라오는 등로입니다
로터리 대피소
대피소에서 커피 한잔 끓여 마시고... 다시 산행을 이어 갑니다
로터리 대피소 위에 있는 샘터
대피소를 출발하면 바로 '법계사'가 나옵니다. 이 등로로 올라선 게 오늘로 다섯 번째인데... 처음으로 경내에 들어가 보네요. 그동안은 새벽에 출발해 천왕봉 일출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올라가다 보니 들릴 여유도 없었는데... 오늘은 시간이 많아서 한번 들려봅니다. 제 작년에 '태백산'을 갔다가 알게 된 사실이...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찰은 태백산 아래 있는 '망경사(약1.470m)'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있는 곳이 '법계사(약1.450m)'라고 하네요. 그다음은 '설악산'의 '봉정암(약1.224m)이라고 합니다. 사실 지리산 '반야봉'아래 '화엄사'의 말사로 알려진 '묘향대'라는 암자가 있습니다. 실측 고도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그 높이가 1.500m 정도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웅전이 없고... 기타 여려 이유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로 인정을 못 받는 듯합니다. 그리고 법계사도 '적멸보궁(寂滅寶宮)' 사찰 중 한 곳입니다. 국내 5대 적멸보궁은 '영축산 통도사' '사자산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상원사' '함백산 정암사'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 몇 곳이 더 있다고 합니다. '해인사'의 말사인 법계사도 그중에 한 곳입니다
법계사 입구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적멸보궁(寂滅寶宮)'입니다. 이른 아침이라 안쪽으로 들어가는 게 실례 같아서 옆에서만 보고 왔습니다
경내 위쪽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명성에 비해 조그마한 법계사는 아담한 별장 같은 분위기입니다
이 자리에는 '산신 할매상'이 조성된다고 합니다
일제가 조선의 흥망이 법계사에 달려 있다 하여 전쟁 중에 여러 번 훼손을 시킨 곳인데... 여러 번의 복구를 걸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합니다
보물로 지정된 법계사 3층석탑
적멸보궁(寂滅寶宮) : 사찰의 대웅전에 가면 부처님 불상이 있습니다. 보통 불상을 모셔놓고 예불(禮佛)을 (불교 신자가 아니라서 이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드립니다. 교회로 얘기하자면 성전(聖殿)에 '예수님 십자가'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런데 적멸보궁에는 불상 없이 불단(佛壇)만 있습니다. 불상 대신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불사리)' 를 모셔놓고 지내는 것이죠. 그곳을 적멸보궁이라 합니다. 대신 적멸보궁 사찰에는 밖에 '사리탑'을 세우기도 합니다. '진신사리(眞身舍利)'는 부처님이 입적(入滅) 한 후에 화장(火葬)을 하고 난 뒤에 나온 사리를 말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신라시대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와 다섯 곳에 나누어 봉안을 했습니다. 그 장소가 '5대 적멸보궁'이라고 얘기하는 사찰( '영축산 통도사' '사자산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상원사' '함백산 정암사')입니다. 지금 알려진 것과 다르게 5대 적멸보궁 사찰 말고도 몇 군데가 더 있다고 합니다.
이른 시간이라 여기저기 둘러보는 게 실례가 될까 싶어 곧 빠져나옵니다
경내에 핀 꽃들도 한 번씩 담아보고
법계사 산신각
숲 속 정원 같은 분위기를 느끼며 내려갑니다
알고자 하면 보이는 것이 더 많아지는가 봅니다
법계사 경내를 빠져나와 다시 산행을 이어갑니다. 이 곳부터 천왕봉까지는 약 2km 정도 거리입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잠시 후 시야가 트인 조망바위가 나오고 뒤을 돌아보면 신라시대 '최치원'이 이 곳에 올라 글을 읽고 시를 썼다는 '문창대'가 보입니다. 그 옆의 작은 봉우리는 '세존봉'입니다
조망을 즐기고 다시 산행을 이어가면 '개선문'이 나오구요. 좌측의 암릉과 우측의 바위 사이를 지나게 돼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듯하네요. 지붕이 없는 문입니다ㅎ
개선문
흰참꽃... 나무에 명찰이 있어서 알게 되었네요ㅎ
오를수록 조망은 흐려집니다. 헬기장에서 봤던 그 구름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거죠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지 가끔 이렇게 조망이 트이면 주위를 살펴봅니다. 우측(동쪽)을 바라보면 흐릿하게 보이는 능선이 지리산 '동남 능선'의 일부인 '달뜨기 능선'입니다. '웅석봉'에서 '덕산'으로 내려서는 '지리 태극종주' 등로의 마지막 능선인 셈이죠. 달뜨기 능선의 명칭은 예전 '남부군'들이 토벌대를 피해 지리산(치밭목 근처라고 함)에 숨어들어 있을 때 저 능선 위로 달이 뜨는 모습을 보고 가족을 그리워했다는... 뭐 그런 내용입니다. 그래서 그런 명칭이 붙여졌다고 하네요. 사진에 보이듯이 계속 평탄한 등로가 이어지는 곳입니다
다시 올라가면 '남강'의 발원지이자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천왕샘'이 나옵니다
천왕샘
석간수인 천왕샘은 천왕봉 암릉 바로 아래 있는 곳인데... 고인 샘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틀간 내린 비로 암릉에서 흐르는 빗물과 섞여있어 지금 마시기는 좀 꺼림칙합니다ㅎ
바람은 거세게 불어대고... 하늘은 아직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 천왕봉 아래 계단에서 잠시 쉬어봅니다. 지금 올라가 봐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바람의 흐름에 하늘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더니 그 흐름이 끊겼나 봅니다ㅎ 하늘이 완전히 개인 것을 보고 배낭을 메고 계단을 올라섭니다
천왕봉 옆 암릉에 먼저 올라서서 주위를 바라봅니다. 남쪽으로는 지금까지 올라온 등로(좌)와 중산리 방향이 보입니다
서쪽으로는 지리산 주능선 방향입니다. '촛대봉'이 지척에 있는 듯하고.... 종주의 끝 지점인 '노고단'은 구름에 갇혀있네요
하늘이 열린 천왕봉의 모습입니다
동쪽으로는 지리산 제 2봉인 '중봉(1.875m)'(좌측)과 그다음 봉우리인 '써리봉(중앙)'이 보이네요. 이 등로가 '화대 종주'의 마지막 등로입니다. 천왕봉에서 중봉을 지나 써리봉에 다다른 후 내려서면 '치밭목 대피소'가 나오고 이후로 종착지인 '대원사'로 가게 되는 거죠
혼잡한 시간을 피해와서 그런지 천왕봉에 산객들이 그리 많지는 않네요. 보통 토요일은 13시~15시 사이가 가장 많고 일요일은 일출 시간대와 10시~13시 사이가 가장 많습니다. 등산로가 한정되어 있고 동선을 따져보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산 시간을 감안해야 하니 그런 것 같습니다
천왕봉 정상
동북쪽을 바라보면 '중봉(우측)'과 그 뒤로 '하봉(1.781m)'이 보입니다. 중봉에서 하봉으로 이어진 지리산 '동부 능선'입니다. 능선을 따라가면 지리산의 대표적인 습지인 '왕등습지'가 나오고... 이후 '밤머리재'가 나옵니다. 그리고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동남 능선이 연결되는 것이죠. 중봉~밤머리재는 비탐방 구간입니다. 그리고 반달가슴곰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고 하네요ㅎ
천왕봉 정상석
천왕봉(天王峰) 정상석 : 여러 모습의 정상석(목)을 거쳐 1982년에 세워진 현재의 정상석은 그 당시 경남 도지사와 산청*함양의 국회의원이 제작해서 헬기로 옮겨 설치했다고 합니다. 정상석은 앞면에 '지리산(智異山)'과 '천왕봉(天王峰)' 그리고 고도(1.915m)가 새겨져있고... 뒷면에는 '한국인(韓國人)의 기상(氣像) 여기서 발원(發源)되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초창기에는 원래 '한국인(韓國人)' 아닌 '경남인(慶南人)'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바로 '영남인(嶺南人)' 바뀌었다가 지금의 '한국인'으로 바뀌어진 거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경남'지역에 한정하다가... 이후 '경북'을 포함한 '영남'으로 바꿨나 봅니다ㅎ 여러 가지 얘기가 있습니다만... 그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경남 합천 출신인 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는 얘기가 제일 많은 것 같습니다. 더 따져보면 어떤 신화적인 존재를 만들기 위한... 뭐 그런 의미 아닐까요. 고대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지리산 천신(天神)에 대한 연결 고리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처음에 설치했을 당시 애매한 정상석의 위치입니다. 가 보시면 알겠지만 천왕봉 정상 암릉은 꽤 넓은 편입니다. 그런데 '천왕봉' 글씨가 보이는 쪽은 벼랑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글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면 촬영하는 사람이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 넓은 자리를 놔두고 한쪽 구석에 설치한 이유도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민원이 많아서 작년에 국립공원에서 설문조사를 통해 이 위치를 살짝 뒤로 옮겨 놨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북쪽의 '함양'과 남쪽의 '산청' 지자체가 반대를 했었다죠. 왜냐하면 천왕봉의 저 위치가 두 도시의 경계선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 자기 지역으로 옮기기 위해서 설전을 펼쳤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암튼 뒤로 옮겼으니 함양이 일단 이긴 걸로 보이네요ㅎ
천왕봉 아래 돌로 평평하게 다듬어 놓은 곳은 예전에 사당(祠堂)'이 있던 자리라고 하네요. 이 사당에는 지리산 '산신(山神)'으로 알려진 '성모 석상'을 모셔놓은 곳인데 그 역사적 배경에 따라 산신(山神)의 존재가 바뀌어서 현재 마지막으로 불리어지는 상은 고려 '왕건'의 어머니인 '위숙 왕후'의 '성모 석상'이라고 합니다. 이 성모석상은 중산리 입구에 있는 '천왕사'에 모셔져 있습니다. 그래서 산청의 한 산악회에서는 매년 이 곳에서 '산신제(山神第)'를 지낸다고 합니다
지리산(智異山) 산신(山神) 이야기 :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보며 개인적으로 대충 이해하고 간략하게 적어보자면... 역사적으로 지리산 산신(山神)으로 모신 존재는 신라 '박혁거세'의 어머니인 '선도 성모'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천왕봉'이 아닌 '노고단'에서 모셨다고 합니다. 노고단(老姑壇)은 '늙은 시어머니의 제사터'란 말인데 지리산의 '여신(女神)'으로 알려진 '마고(麻姑)'에 어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고와 노고는 같은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후에 고려 태조 '왕건'이 노고단에서 모시던 '산신제(山神祭)'를 천왕봉으로 옮겨와 지냈는데... 그 이후로 지리산의 산신(山神)은 '선도 성모'에서 왕건의 어머니인 '위숙 왕후'로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지리산 중산리에 있는 '천왕사'안에 '성모 석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즉 역사가 흐름에 따라 혹은 종교적인 해석으로 산신(山神)의 존재가 변화가 되어온 것 같습니다. 두 가지 모두 태조의 신격화를 위한 (신의 아들이라는 그런...) 일들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추측만 해봅니다. 그러니 현재 대중적인 '정설(定說)'은 지리산 산신(山神)은 '천신(天神)'의 딸로 알려진 '여신(女神)'인 '마고(麻姑)'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하네요ㅎ 21세기에 이런 이야기들이 쉽게 와 닿지는 않지만 그 당시 시대적 배경에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은 드네요. 암튼 현재는 산신(山神)이 두 곳으로 갈라져 있는데... 산청에서 천왕봉 아래 지내는 '산신제(山神祭)'가 있고 구례에서 노고단에서 지내는 '남악제(南岳祭)'가 있다고 합니다. 산신(山神)에 대한 얘기는 올봄 경주여행을 갔다가 알게 돼서 그 뒤에 궁금한 것을 검색하다 보니 지리산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신라시대에 중국의 '오악 신앙(五岳信仰)'을 들여와서 '동악(東岳)=토함산(吐含山)' '서악(西岳)=계룡산(鷄龍山)' '남악(南岳)=지리산(智異山)' '북악(北岳)=태백산(太白山)' '중악(中岳)=팔공산(八公山)'으로 지정한 후에 산신제를 지냈는데 '남악'인 지리산의 노고단이 그 장소였다는 얘기죠.
천왕봉에서 내려와 천왕봉의 하늘을 바라보고 이제 다시 산행을 이어갑니다
천왕봉을 내려서서 앞으로 가야 할 주능선을 바라봅니다. 참 멀죠ㅎ
천왕봉을 내려서면 잠시 후 우측으로 비법정 탐방로 진입로가 나옵니다. 바로 '지리 10경' 중 9경 '칠선계곡(七仙溪谷)'으로 내려서는 등로입니다. 한국의 3대 계곡(설악산 천불동 계곡 / 한라산 탐라 계곡 / 지리산 칠선 계곡)이라 불리는 칠선계곡은 지리산 국립공원에 탐방 예약 신청을 하고 갈 수 있는 곳 입니다
칠선계곡(七仙溪谷) : 한국의 3대 계곡이라 불리는 칠선계곡은 '천왕봉'과 '제석봉'의 능선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으로 97년 태풍의 영향으로 등로가 심하게 훼손되어 그 이후로 탐방 예약제로만 등산이 가능한 등로 입니다. 현재는 매년 05월. 06월. 09월. 10월 중 매주 월요일에만 등산이 가능합니다. '마천면'의 추성 주차장에서 출발해서 천왕봉까지 오르는 이 등로는 탐방 예약을 하고 국립공원의 가이드와 함께 산행을 하게 되는데 천왕봉까지의 거리가 약 9.7km(약 8시간 소요)라서 이후 천왕봉에서 바로 하산이 불가능 할 경우 대피소 예약과 함께 산행을 해야 합니다. 매주 토요일에는 탐방 예약 신청과 함께 상시 개방 구간인 비선담을 지나 '삼층 폭포'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프로그램(왕복 약 13km)도 있습니다. 그리고 평상시에 자유롭게 탐방이 가능한 코스는 중간 지점인 '비선담' 까지이고... 다시 되돌아와야 합니다.
천왕봉에서 내려서는 길에 보이는 지리산 제 3봉인 '제석봉(1.808m)'은 산신제(山神祭)를 지내던 '제석단'이 있는 곳입니다
지리산(智異山) 천왕봉(天王峰)은 남한에서 보면 백두대간의 시작이지만 그 맥을 따라가면 '백두산(白頭山)'이 있습니다. 즉 백두대간의 시작은 백두산이라고 봐야 하죠. 그렇다 보니 이전에는 지리산을 '두류산(頭流山)'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백두산에서 맥을 따라서 흘러내린 마지막 산이라는 거죠. 최근에는 천왕봉에서 내려서는 백두대간의 마지막 지점이 어딘가에 초점을 맞춰서 그 줄기를 이어가고 있는데 그 신빙성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천왕봉~중봉~하봉에서 밤머리재로 연결하는 '동부 능선'과 밤머리재에서 다시 '동남 능선'을 연결해 '웅석봉'까지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또 웅석봉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을 따라가게 되면 '덕산'이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물(水)를 만나게 되니 종착지로 보는 것 같습니다
백두대간 지리산 주능선
백두대간(白頭大幹) : 백두대간은 쉽게 말해서 한반도 지형에서 큰 뼈대를 이루는 산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인간으로 따지면 목에서 척추까지 내려오는 뼈대인 셈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머리가 백두산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척추의 맨 아래쪽은 지리산이 되는 거겠죠. '백두산에서 시작한 큰 줄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나온 어원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스스로 산을 넘지 못 한다'라는 말인데요. 즉 백두대간 능선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능선에서는 물줄기(계곡)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물줄기를 갈라서 '동해'나 '서해' 혹은 '남해'로 보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척추에서 갈라지는(분기되는) 뼈를 '정맥(正脈)'이라고 합니다. 척추에서 뻗어나가는 갈비뼈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런 지리적인 요건으로 '계곡(溪谷)'과 '강(江)'이 만들어진다고 보면 됩니다. 백두대간은 조선 영조시대의 실학자인 '신경준'이 쓴 '산경표(山經表)'에 의해 정립되었다고 합니다. 산경표에는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표기가 되어있는데... 1대간은 '백두대간'을 말하는 것이고... 1정간은 북한에 있는 '장백 정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3정맥 중 남한에서는 9개의 정맥만 있습니다. 나머지 4개는 북한에 있습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보통 '1대간 9정맥'으로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백두산에서 시작해 내려서는 줄기는 여러 산(북한에 있는 산)을 지나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으로 내려섭니다. 그러니 국내에서 갈 수 있는 최북단의 백두대간 봉우리는 금강산 '향로봉'이 되겠습니다. 물론 군부대가 있어서 쉽게 못 가지만요ㅎ 그래서 백두대간(북진)의 마무리는 '진부령'에서 끝나고 있습니다.
천왕봉에서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서면 이내 '통천문'이 나옵니다.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는 뜻의 통천문은 예전에 마음이 악(惡)한 자는 통과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ㅎ 통과 못한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구요ㅎ 암튼 예전에는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없어서 바위틈으로 올라가게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어느 산악인이 사다리를 설치했고... 이후 현재의 계단이 설치되었다고 하네요. 하늘로 올라가는 방법이 더 쉬워진 거죠ㅎ
통천문 계단
통천문을 내려서면 잠시 이런 숲 길도 나옵니다
그리고 다음 봉우리인 '제석봉'으로 살짝 올라서는 등로가 나옵니다. 이 곳이 '호구당터'라 불리는 곳인데... 좌측으로 내려서는 골이 '작은 통신골'이라고 합니다. 천왕봉에서 바로 내려서는 '통신골'과 합류하게 되는데... 이 계곡이 '법천 폭포'로 내려가게 됩니다. 저도 안 가본 곳이라 잘은 모르겠네요ㅎ 호구당터는 호랑이에게 잡혀 먹힌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자리였다고 합니다
통천문에서 내려와서 편안한 등로를 따라 걷다가 잠시 오르막을 올라서면 시야가 탁 트이는 곳이 나오는데 이 곳이 지리산 제 3봉 '제석봉(1.808m)' 안부입니다. 그리고 우측(사진상으로 정면)으로 제석봉 정상이 있습니다. 정상은 보호 구역이라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뒤쪽으로 내려서는 비등로는 있습니다ㅎ 그리고 이 안부 아래 지리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데크가 있습니다
제석봉 정상 표지판
안부에서 바라본 제석봉 정상
데크에 서서 내려온 천왕봉 정상을 바라봅니다
지리산 주능선이 보이고 장터목에서 올라오는 산객들이 보이네요
제석봉 데크는 천왕봉 정상 다음으로 비박을 해보고 싶은 장소입니다. 그런 날이 올까 싶지만요
제석봉 데크 전망대
지리산 주능선의 설경(雪景) 중 가장 아름다운 구간으로 뽑히는 제석봉은 한때 '주목'과 '구상나무' 군락지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50년대 이후 개인의 탐욕으로 인해 무분별한 벌목과 그 행태를 덮기 위해 인위적인 방화까지 저질러 지금의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남아있는 고사목들이 그 당시에 화재로 인해 남겨진 모습들입니다. 1967년에 국립공원에 지정된 이후로 생태복원을 했지만 아직까지도 복구가 안된다고 하네요. 새롭게 식목을 해도 뿌리가 잘 내려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언제까지 이런 민둥산의 모습이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남아있는 고사목들도 이제 하나씩 쓰러져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 곳에는 구상나무가 새롭게 자라기도 하구요
제가 3년 전에 처음 봤던 이 고사목도 언젠가 사라질 날이 올 것 같네요
이 곳에 아직 구상나무와 주목이 남아 있었다면 어떤 모습일지 잠시 생각도 해봅니다
장터목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조금 전까지 구름에 쌓여있던 흔적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 후 식사를 합니다. 하늘도 아직 흐리고 시간도 여유가 많아서 대피소 안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주로 활동하는 산악회 회원을 만나 얘기도 나누고... 오후 1시가 넘어서야 다시 산행을 이어갑니다. 다음 봉우리인 '일출봉'에 올라서다가 뒤를 돌아 대피소 전경을 바라보고... 옛 선조들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을까... 잠시 생각도 해봅니다
장터목 대피소
장터목 대피소 : 국내 대피소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장터목 대피소는 1971년 '지리산 산장'이란 이름으로 처음 모습을 보인 뒤 1996년 지금의 '장터목 대피소'로 새롭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국내 대피소중 이용 산객이 가장 많은 장터목 대피소는 이름 그대로 예전에 장터가 섰던 장소입니다. 남쪽의 '산청군 사천면' 사람들과 북쪽의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물물교환을 위해서 만났던 장소라고 합니다. 또는 남쪽 '진주'와 '하동'의 수산물과 북쪽 '함양'과 '남원'의 곡물을 교환하기 위해서 열었던 장터이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힘든 곳까지 그 무거운 물건을 지게에 지고 올라왔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길목이 아니면 지리산 외곽을 돌아야 하는데... 예전의 도로 상황으로 보자면 그 길이 더 험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중간 지점인 이 곳이 더 좋은 자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2년 전에 취사장(우측건물)을 새로 만들어서 이제 한 겨울에도 좁지 않은 공간에서 식사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다른 대피소는 모르겠으나 장터목 대피소는 취침 시간을 제외하고 중간 2호실은 항상 개방해놓습니다. 대피소의 역할을 하는 것이죠. 대피소 건물 뒤쪽의 화장실 옆으로 백무동으로 내려서는 등로가 있고... 취사장 건물 옆의 계단에는 '산희샘'이 있습니다. 장터목 대피소의 식수로 사용되는 이 샘은 법천골의 발원지라고 합니다. 이 샘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중산리로 향하는 '법천골'입니다.
장터목을 떠나 잠시 숲 속으로 들어가는 등로는 이내 작은 봉우리를 만납니다
숲 속의 봉우리는 '일출봉'입니다. 이 곳에서 남쪽으로 내려서는 비탐방 등로가 있는데... '일출봉 능선'입니다. 명칭의 유래는 일출봉 능선에서 천왕봉을 배경으로 바라보는 일출이 멋있다해서 붙여진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조망이 시원하게 트이지는 않지만 흐릿한 이 등로를 따라가 보면 바로 암릉 전망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길을 따라 내려서면 좌측으로는 중산리 방향의 등로가 나오고... 우측으로는 '거림' 방향으로 내려서는 골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일출봉 정상은 숲에 가로막혀 조망이 트이지는 않지만 뒤를 돌아보면 오늘 걸어온 등로가 살짝 보이기도 합니다. 3년 전 겨울 백무동에서 '한신 계곡'으로 올라 이 곳을 지난 적이 있는데... 해를 등지고 바라보는 설경이 장관이었습니다. 하얗게 덮인 제석봉과 천왕봉의 모습은 겨울이면 생각나게 하는 풍경입니다
일출봉에서 바로 내려서면 조망이 트이고 바로 펼쳐지는 모습은 지리 10경 중 5경 '연하선경(烟霞仙境)'입니다. '연하봉(1.721m)'을 전후로 펼쳐져있는 이 평원은 지리산의 주능선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길입니다. 연하선경이란 구름(연무)이 흘러가는 이 능선에 앉아 있으면 신선놀음을 하는 기분이 들게 된다는 말입니다. 바람과 연무에 자주 휩싸여있는 이 길은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모습이 펼쳐지겠죠
연하선경
지금 구름이 흘러간다면 저 길을 걷는 산객은 연하선경에 빠져들게 되겠죠
장터목 산장 시절에 산장 주변에 야영장이 모자라 이 곳에서도 야영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복구가 되어서 새로운 생명들이 자라고 있네요
연하선경을 걷다가 다시 연하봉에 올라 솟아있는 암릉을 바라봅니다
암릉에 핀 꽃도 바라보고
뒤를 돌아 일출봉 능선을 바라봅니다
다시 내려서서 연하선경에 빠지고
멀리 보이는 '촛대봉'도 바라봅니다
내려서다가 뒤를 돌아 연하봉을 바라보고
길 위에서 평원이 펼쳐진 남쪽을 바라봅니다
연하봉에서 내려서는 산객을 배경 삼아 한번 더 담아보고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가 작은 계단을 올라서면 나오는 암릉 위에서 뒤를 돌아 바라봅니다. 연하선경의 모습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이 암릉은 한때 이름 없는 무명봉이었으나 최근에 '화장봉'이라는 명칭이 생긴 듯합니다. 지리산을 예전부터 자주 다니던 옛 선배들은 이 암릉을 '꽁초봉'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곳에 서면 사방으로 트이는 풍경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감상했다는... 그리고 그 꽁초를 겹겹이 쌓인 바위에 꽂아놓고 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ㅎ 뭐 바위에 앉아서 막걸리 한잔하고 가는 산객도 많았겠죠ㅎ
연하선경
비교적 하늘이 맑은 북쪽 '백무동'을 바라보고
서쪽으로 바로 앞의 '영신봉'과 그 능선을 따라 내일 가야 할 '명선봉(우측)'과 그 뒤로 '반야봉(중앙)'과 그 좌측으로 '노고단'을 바라봅니다
이제 지척에 있는 바로 앞의 '촛대봉'을 보니 다 왔구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한참을 쉬다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담아보면서... 이 길이 더 길었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풍경이 펼쳐지는 국내의 산들이 제법 있습니다. '소백산'도 그러하고... '황매산'도 그러하고... 영남알프스의 '간월산'과 '신불산'도 그러하죠... 그런데 1.700m가 넘는 연하봉은 특별해 보입니다. 그리고 지리산이라 더 특별해 보입니다
연하선경
지리산에서 만난 꽃도 더 특별해 보입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계속 바라만 보네요
지리산을 다니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지리 10경(智異十景)'입니다. 지리 10경은 지리산 최초의 산악회인 '연하반'의 후신인 '지리 산악회'에서 1972년경에 지리산을 알리고자 만든 것입니다. 그 당시 만들어진 지리 10경 중 3경 '반야낙조(般若落照)'가 있습니다. 흔히들 반야낙조라 하면 '반야봉'에 올라 지리 '서북능선'과 '남원'의 벌판으로 붉은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얘기합니다. 또 어떤 곳은 '연하봉'에서 바라볼 때 '반야봉'과 '반야중봉' 사이로 떨어지는 일몰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흔히들 '궁뎅이'로 표현하는 반야봉은 동쪽이나 서쪽에서 바라볼 때 가운데가 움푹 패인 모습으로 보입니다. 동쪽에서 바라볼 때 왼쪽이 '반야봉'이고 우측이 '반야중봉'입니다) 그 정확한 유래는 알 수없으나... 지리산 국립공원에서는 한때 반야낙조를 후자에 무게를 두고 홍보를 했습니다. 태양의 각도상 반야봉과 반야중봉 사이로 떨어지는 일몰을 보기가 쉽지는 않은데... 태양의 고도 변화로 인해 1년 중에 2주 정도는 그 시기가 온다고 합니다. 어원이 어찌 되었건... 지금은 반야봉에 올라서 일몰을 본다는 건 불법 야간 산행이 되기에 불가능한 일이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지리산 국립공원에서 후자에 무게들 두고 홍보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ㅎ
지리 10경(智異十景)
01경 : 천왕일출(天王日出) > 3대(三代)가 내리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지리산 천왕봉의 일출은 변화무쌍한 천왕봉 하늘의 날씨로 인해 볼 수있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
02경 : 노고운해(老姑雲海) > 노고단에서 바라보는 노고운해는 섬진강을 끼고 있는 구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습이다.
03경 : 반야낙조(般若落照) > 반야봉에 올라 서쪽 하늘을 배경으로 떨어지는 붉은 태양을 말한다.
04경 : 벽소명월(碧宵明月) > 푸른 밤하늘 이라고 불리우는 벽소령의 밝은 달빛은 한기(寒氣)를 느낄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그래서 '벽소한월(碧宵寒月)'이라 부르기도 한다.
05경 : 연하선경(烟霞仙境) > 연기가 피는듯 한 구름에 감싸인 연하봉의 능선은 신선이 된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06경 : 불일현폭(佛日懸瀑) > 쌍계사 안쪽에 있는 '불일폭포'를 가르키는데 많은 수량으로 인해 그 소리가 우렁차다고 한다.
07경 : 직전단풍(稷田丹楓) > 피아골 단풍 이라 불리는 직전단풍은 마을 이름인 직전마을에서 유래 되었으며 가을이면 피에 물든 듯한 붉은 단풍으로 인해 황홀경에 빠진다고 한다.
08경 : 세석평전(細石平田) > 잔돌로 이뤄진 너른 땅인 세석평전은 '세석철쭉'으로 더 알려져있다. 매년 봄이면 연분홍 철쭉으로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09경 : 칠선계곡(七仙溪谷) > 일곱선녀가 목욕을 즐겼다는 칠선폭포는 지리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알려져있다.
10경 : 섬진청류(蟾津淸流) > 지리산 서남쪽을 감싸고 흘러 '하동'을 지나 '남해'로 빠져나가는 섬진강의 굽이굽이 흐르는 물줄기를 가장 아름답게 바라 볼 수 있는 곳이 지리산이다.
잠시 숲 속을 걷다 보면 바람이 드나드는 작은 고개가 나오고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촛대봉'을 바라보고 오르막 길을 올라섭니다
짧은 오르막에 올라서면 촛대봉 안부가 나오고 좌측으로 촛대봉을 올라서는 등로가 있습니다. 그곳에 올라서서 동쪽을 바라보면 지나온 능선이 한눈에 펼쳐집니다
서쪽으로는 지리 10경 중 8경 '세석평전(細石平田)' 혹은 '세석철쭉'이라 불리는 풍경이 보입니다. 잔돌이 펼쳐진 평원이라는 세석평전은 국내에서 가장 넓고 높은 곳에 위치한 평원입니다. 매년 5월에서 6월까지 연분홍 철쭉이 피는 이 곳은 한때 군부대가 있었고 야영장으로 사용이 되어서 훼손이 심각했다고 합니다. 생태 복원을 시작한 후로 다시 예전의 모습은 찾아가고 있지만 오리지날 철쭉이라 불리던 세석의 연분홍 철쭉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진달래가 피고 있습니다. 그래도 구상나무가 제법 자리를 잘 잡고 자라고 있어서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다시 뒤를 돌아 연하봉과 제석봉... 천왕봉을 바라보고 그 풍경에 빠져봅니다
'연진 처자'가 망부석으로 되었다는 '촛대봉(1.703m)' 정상은 이 곳에서 바라만 보고
촛대봉
짙은 구름과 함께 펼쳐진 서쪽을 다시 바라봅니다. '세석 평원'의 중심에 있는 '세석 대피소' 위로 보이는 '영신봉'과 그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이어진 지리산 '남부 능선'도 바라봅니다. 주능선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능선들이 겹겹이 쌓여 보이는 풍경은 지리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없게 만드네요. 언제 저곳을 다 가보게 될지... '지리산 남북 종주'와 언젠가 또 하게 될지 모르는 '낙남정맥(洛南正脈)'을 하게 된다면 걸어볼지도...ㅎ 다른 곳들은 대부분 비탐방 탐방로에 묶여 있는 터라 평생 못 가볼지도 모르겠네요ㅎ
촛대봉에 서서 안부를 바라보면 그 뒤로 멀리 '백무동'이 보입니다. 지리산을 오를 때 자주 이용되는 '백무동'은 '영신봉'과 '촛대봉' 사이의 세석 대피소에서 내려서거나 조금 전 지나온 장터목 대피소에서 내려서게 돼있습니다. 세석에서 내려서면 지리산 4대 계곡의 하나인 '한신 계곡'을 따라 내려가게 되고... 장터목에서 내려서면 제석봉에서 내려서는 능선과 합쳐진 후 내려서게 됩니다. 백무동의 명칭은 이 지역에 안개가 자주 끼어서 '백무(白霧)동'이라고도 부르고... 지리산 산신인 '마고'의 딸들이 백무동으로 내려서서 무당을 만들었다는 전설로 인해 '백무(百巫)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 정확한 지명은 알 수없으나... 어찌 되었던 한때 백무동에는 '무당'이 많았다고 합니다
촛대봉 안부
촛대봉에서 바람과 함께 주위를 조망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등로가 잘 정비되어있는 완만한 돌계단을 내려서면 좌측 정면으로 '세석 대피소'가 보이고 좌우로 펼쳐진 녹색 평원의 모습이 자주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구상나무와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천에 널린 이 풍경은 제가 꽃과 식물에 지식이 많았다면 제 발걸음이 더 멈춰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세석 대피소
세석대피소 : 지리산 주능선의 영신봉과 촛대봉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세석 대피소는 국내 대피소 중에 가장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곳입니다. 지리산 종주(성삼재에서 출발할때)시에 가장 많이 이용되기도 하고. 평원의 일부가 습지로 되어있어서 지리산 주능선의 샘터 중에 가장 많은 수량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서쪽의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내려서는 남부 능선에는 신비의 샘으로 알려진 '음양수'가 있고 남쪽으로 계곡을 따라 내려서면 '거림 계곡'이 있습니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유명한 '한신 계곡'을 따라 백무동으로 내려서는 등로가 있습니다. 현재 본 건물 옆의 취사장은 옛 '세석 산장' 시절의 본 건물이었습니다.
세석평전 한 구석의 구상나무들도 이제 제 자리를 잡아가는 듯합니다
뒤 돌아 내려온 길을 바라보고
고요한 평원의 속으로 가야 할 길을 바라봅니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아래 펼쳐진 세석의 모습은 좋은 배경이 되어 제 카메라에 자주 담깁니다
그늘이 있는 나무 사이의 길을 걸으니 괜시리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그 속에 숨 쉬고 있는 작은 생명도 담아봅니다
나란히 피어있는 망울들은 줄지어 어디론가 걸어가는 것 같고
주위의 꽃보다 먼저 피어오른 이 꽃은 자기를 먼저 봐달라고 하는 것 같네요
세석 대피소를 지나 영신봉을 오르는 길에 뒤를 돌아보니 촛대봉을 오르는 돌계단이 보이네요. 세석평전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곤충 한 무리가 어디론가 날아가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이 곳에도 흰참꽃이 보이네요
세석 대피소를 지나 오르막을 올라서면 헬기장이 나옵니다. 예전에는 이 곳이 지리산을 산행하다가 세석 대피소에 자리가 없을 경우 사용했던 야영지입니다. 세석 대피소 주변이 모두 야영지였으니 얼마나 많은 산객들이 왔는지 짐작이 갑니다. 불과 몇 년 전이긴 하지만 제가 지리산을 처음 방문했던 2011년 가을에도 대피소 인근에서는 야영이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침낭과 텐트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런 낭만을 가지고 계시던 옛 산객들은 국립공원에서 하는 지금의 운영 방식이 마음에 안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대피소는 주말에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고 지리산을 가고 싶어 하는 산객들은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거나 촉박하게 당일로 가야 하는 그런 상황이 오게 되죠. 그래서 숨어서 불법으로 비박을 하거나 비탐방 지역에 들어서서 비박을 하고는 합니다. 꼭 대피소 예약이 안돼서 그렇게 다니는 건 아니겠지만 야영이 혀용 되는 자리가 만들어진다면 그렇게 숨어서 비박을 하고 다니는 행동들이 더 줄어들지 않을까 하네요. 어떤 방법이 더 자연을 보호하는데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합니다. 암튼 아영지로 사용했던 이 곳은 지금 생태 복원이 이루어져서 지금은 보기 좋게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저 안에 핀 꽃들이 뭐라고... 누가 얘기해줬는데ㅎ
영신봉에 올라서는 길에 바위에 올라 다시 바라봅니다. 하늘이 이뻐서 자주 쳐다보게 되네요. 지리산을 보러 왔으니 뭐든 실컷 봐야죠...ㅎ
조물주가 만들고 연진 처자가 가꾸었다는 세석 평전... 이제 사람이 가꾸게 되는 이 모습은 10년 후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네요
세석평전 음양수의 전설 : 지리산에 최초로 입성한 사람으로 알려진 '호야(乎也)'와 '연진(蓮眞) 처자'는 영신봉 아래 '대성골'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씨족사회의 엄한 규율과 간섭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던 두 부부에게는 자녀가 없었는데... 어느 날 하루 호야가 산과(山果)를 따기 위해 깊은 산속에 들어간 사이 한 마리의 곰이 연진에게 다가와 이 근처 세석 평원에는 아들 딸을 낳을 수 있는 '음양수'라는 신비의 샘이 있으니 가서 마셔보라고 권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고 연진은 호야와 상의도 없이 음양수를 찾아가 실컷 마셨다고 합니다. 곰과 사이가 안 좋던 호랑이가 그 얘기를 엿듣고 지리산 산신령에게 그 얘기를 고하니... 산신령이 대노(大怒)하여 음양수의 신비를 인간에게 말해준 곰을 잡아다가 토굴에 가뒀다고 합니다. 호랑이는 그 공(供)으로 백수(百獸)의 왕이 되었고... 음양수의 샘물을 훔쳐 마신 연진에게는 '잔돌 평전(세석평전)'의 돌밭에서 혼자 평생 철쭉꽃을 가꾸게 하는 벌을 내렸다고 합니다. 매일 꽃을 가꾸느라 손에 피가 멈추질 않던 연진은 밤이 되면 촛대봉에 올라 촛불을 켜고 산신령에게 죄를 빌었으니... 그 몸이 굳어 그대로 망부석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산신령이 감동을 하여 인간에게 음양수를 마시게 해놨다는... 대략 그런 내용입니다ㅎ 남부 능선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있는 '음양수' 샘터는 바위의 양쪽에서 물을 흘러내려 한 곳으로 모아지는데... 그 모습이 양과 음의 조화로 해석한다고 합니다.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세석 대피소는 하늘이 내린 장소인 것 같습니다
세석평전
영신봉이 표시되어있는 이정표를 지나 다시 산행을 이어가면 다시 조망터가 나오고... 흰 구름 아래 우뚝 솟은 천왕봉을 다시 한번 바라봅니다
그리고 영신봉을 지나 내려선 암릉 위에서 내일 가야 할 길을 가늠해 봅니다. 바로 앞의 봉우리가 '칠선봉 전망대'인가 싶고... 그 뒤로 내일 가야 할 '명선봉'이 아닌가 싶네요. 저 멀리 뒤로는 좌측의 '노고단'과 중앙으로 '반야봉'이 보입니다. 역광이 아니면 구름과 함께 더 멋진 사진으로 남을 텐데... 아쉽습니다
남쪽으로 겹겹이 쌓인 능선들이 한 곳으로 모여지는 자리는 '대성리'입니다. 영신봉에서 내려서는 남부 능선의 지능선들이 서쪽으로 내려서고... '명선봉'과 '토끼봉'에서 내려서는 능선들... 그리고 '삼도봉'에서 남쪽으로 내려서는 '불무장등' 능선이 동쪽으로 내려서며 만들어지는 이 계곡들이 모아져 '화개천'을 이루고 '쌍계사'를 지나 '섬진강'으로 흘러갑니다
영신봉 아래 암릉 조망터를 내려서면 내리막 계단이 나옵니다. 반대편 성삼재에서 출발하는 지리산 종주를 하는 산객들이 많이 힘들어하는 구간입니다. 여기까지 대략 20km 가까이 걸어왔으니 이 계단을 올라설 때는 체력적으로 많이 지친 상태겠죠. 그런 상황을 배려한 점인지... 계단이 끝날 때쯤에 작은 벤치가 하나 있습니다. 그곳에 앉으면 이런 조망이 펼쳐지구요. 가야 할 길이 멀었으니 힘내서 가라는 듯...ㅎ 계단 설치를 누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이래저래 명당자리입니다ㅎ
영신봉 아래 암릉 사면으로 계단을 내려서서 뒤돌아 보면 영신봉의 마지막 암릉이 보입니다. 영신봉 정상은 암릉 뒤에 있습니다
지리산에서 기(氣)가 가장 쎄다고 얘기하는 영신봉은 예전에 도인들이 이 곳에 올라 수행을 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암릉 중간중간 보면 사람 한 명 앉을자리가 몇 군데 보입니다
영신봉 이후 비교적 평탄한 등로를 따라 걷다 보면 이내 나오는 곳이 '칠선봉'입니다. 일곱 명의 선녀들이 서 있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인데... 암릉이 일곱 개는 아닌 듯합니다ㅎ 여섯 개 밖에 보이지 않던데... 다른 암릉 한 개는 등로를 벗어난 곳에 숨어있는지 모르겠네요. 다음에 가게 되면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봐야겠습니다ㅎ
칠선봉 바위
일곱 선녀 중 한 선녀... 선녀라고 그 자태가 다 아름답지는 않네요ㅎ
칠선봉에서 다시 산행을 이어가다 곱게 펴있는 단풍잎을 한번 바라보고 갑니다. 이제 몇 개월 후면 곱게 물들어 사람들을 설레게 하겠네요
칠선봉에서 숲 길을 지나 잠시 오르막을 올라서면 동남쪽으로 확 트이는 암릉 전망대가 나옵니다. 오늘 가야 할 구간 중에 마지막으로 천왕봉을 바라볼 수 있는 '칠선봉 전망대'입니다. 이 봉우리도 칠선봉과 거의 같은 고도의 높이 같은데 봉우리 이름은 없습니다. 아마도 이 곳에 서면 바로 앞에 칠선봉이 보여서 붙여진 명칭이 아닐까 합니다
파란 하늘 아래로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내려서는 '남부 능선'이 선명하게 펼쳐져있네요. 저곳 어딘가에 '음양수'가 있겠죠ㅎ 능선을 따라 가면 남부 능선의 중심 '삼신봉'이 보이고... 반대쪽으로 내려서면 '외삼신봉'을 지나 그 아래 단풍으로 아름다운 '청학동 삼성궁'이 있겠네요. '삼성궁'의 단풍이 보고 싶은데... 가을에 다시 들려봐야겠습니다
암릉에 올라 동북쪽을 바라보니 중봉에서 잠시 내려섰다가 올라 선 '하봉'과 그 길로 이어진 '동부 능선'이 보입니다. 마지막에 보이는 곳이 '두류봉'인가 봅니다. 그곳은 안 가봐서 잘 모르겠네요. 제 기억엔 두류봉에서 다시 동쪽으로 방향이 틀어지니... 그 이후의 능선은 이 곳에서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지난가을 지리 태극종주 시에 걸었던 기억을 잠시 떠올려 보게 되네요
남쪽으로 다시 방향을 바꿔 '삼신봉'에서 갈라져 '쌍계사'로 내려서는 '내삼신봉'이 어딜까 추측을 해보네요. 쌍계사는 정면에 보이는 것 같은데...ㅎ 쌍계사가 가늠이 되니 지난봄에 걸었던 남부 능선의 끝자락 '성제봉(형제봉)'이 정면에 보이는 듯합니다. 그 뒤에 능선은 광양 '백운산'같이 보이네요. 잘 아는 누군가가 옆에서 콕 집어주면 좋을 텐데... 그게 아니니 혼자 추측만 할 뿐입니다ㅎ
칠선봉 전망대에서 한참을 쉬다가 출발합니다
못내 아쉬운 듯 한 번 더 바라보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고 칠선봉 전망대 이후로 한참 숲을 걷습니다.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숲이다 보니 힘들지도 않습니다. 잠시 숲을 느끼다 오르막이 있다 싶으면 바로 '덕평봉'에 올라서는 오르막입니다. 오르막 끝 지점엔 고맙게도 시원한 물이 솟는 '선비샘'이 있습니다. 덕평봉 바로 아래 있는 이 샘은 물의 세기는 약해져도 잘 마르지 않아 1년 내내 흐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주변으로 한때 야영터가 있었는데 지금은 생태 복원 작업에 들어가서 등로를 제외하고는 다 막아 놨습니다. 샘이 있으니 터가 있겠죠ㅎ 지금은 거의 숲이 우거져서 주위가 잘 보이지 않는데... 예전에는 주변 조망도 좋았다고 하네요
선비샘
선비샘의 전설 : 지리산의 한 기슭인 덕평마을에 이씨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시골 촌부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하고 배우지도 못해 무식했으며 얼굴 생김새 또한 추하게 생겨 사람들이 멀리 했다고 합니다. 그게 평생의 한(恨)이었던 그 노인의 평생소원은 단 하루라도 선비처럼 대접받고 고결하게 살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 일생을 살던 그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두 아들에게 유언을 전하니 지리산 '상덕평' 샘터 위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했고... 그의 아들들은 유언대로 상덕평 샘터 위에 묘를 쓰니... 훗날 그곳을 지나며 물을 마시던 사람들은 허리를 숙여 물을 뜨게 되어...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게 되었다는... 그런 내용을 알고 훗날 사람들이 '선비샘'이라는 명칭을 지어줬다고 합니다. 현재는 샘터에 돌담을 쌓고 파이프를 연결해 샘물이 흐르지만 예전에는 샘의 위치가 아래에 있어서 허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선비샘 위로 올라서서 있는 듯 없는 듯한 '덕평봉'을 지나쳐 갑니다
다시 숲으로 들어서니 이제 반대쪽으로 넘어 간 햇살에 오전과는 다른 숲의 모습이 보이네요
나뭇잎 하나하나... 꽃잎 하나하나가 제 눈에 자주 들어옵니다
중간중간 남쪽으로 조망이 트이면 눈여겨보던 봉우리가 자주 시야에 잡히고
이제 저 작은 봉우리 사면을 지나면 오늘 하루 쉬었다 갈 제 보금자리가 나오겠네요
'첩첩산중'이라는 단어가 생각 나는 풍경입니다
덕평봉 이후 어쩌면 지루 할 수 있는 숲 길을 한참 걷다 보면 넓은 공터가 나옵니다. 이 곳의 명칭은 정확하지 않으나 '마른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길부터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등로가 펼쳐지는데요. 이 곳이 '벽소령 작전도로'라 불리는 비포장 도로였습니다. 남쪽의 '화개면'과 북쪽의 '마천면'을 이어주던 이 도로는 6.25 한국전쟁시 남부군을 토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로라고 합니다. 남쪽 '삼정 마을'에서 이 곳 까지는 지금 도로가 폐쇄되어서 흔적만 남아있고 북쪽 '음정 마을'에서 연결된 도로는 아직 남아있습니다. 벽소령 대피소에서 음정마을로 하산 시에 만나게 되는 임도가 벽소령 작전도로입니다. 그리고 이 곳부터 내일 가게 될 '명선봉'까지는 '남부군 피의 능선'이라 불리는 길입니다. 지리산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유독 이 곳에서 남부군과 토벌대의 전쟁이 잦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부군 총사령관인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 벽소령 아래 '빗점골'입니다
오른쪽의 암릉 사면을 지나는 이 길은 낙석이 자주 일어나 바닥도 대부분 파쇄석으로 덮인 등로입니다
평탄한 길을 10여분 걸으면 좌측으로 '벽소령 대피소'가 나옵니다. 지리 10경 중 4경 '벽소명월(碧宵明月)'이 펼쳐지는 벽소령 대피소는 제가 네 번째 지리산 종주 시에 하루 묵었던 장소입니다. 우연히도 그 날 저녁 보름달이 보였는데 랜턴 없이도 야외에서 식사를 할 정도의 밝은 달빛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네요.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훗 날 그 날이 벽소명월이 펼쳐진 날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뜻을 알았더라면 더 감상하며 저녁을 보냈을 텐데... 그래서 조금은 아쉬운 기억도 있습니다. 오늘도 그런 하늘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는 하지만... 보름달이 뜨는 날은 아니었네요ㅎ 별빛이라도 보이면 감사할 날씨인 것 같습니다
벽소령 대피소
벽소령 대피소 : 지리산 주능선의 대피소중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벽소령 대피소는 '벽소명월(碧宵明月)'의 이름대로 '푸른 밤하늘의 재(고개)'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2001년에 설치한 빨간 우체통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요즘 추세인 독립형 공간 대피소로 새롭게 리모델링했습니다.
대피소 자리 지정을 받고... 야외에서 혼자 식사를 합니다. 반야봉 옆으로 떨어지는 일몰을 더 감상하고 싶지만... 피곤한 눈이 자꾸 감겨 일몰은 포기하고 들어가 잠자리에 듭니다
오늘 하루 산행을 다시 생각하고... 내일 가야 할 길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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